권재찬·고유정도 무기징역…‘사형 선고’ 어떨 때 내려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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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권재찬(52)이 지난 2021년 12월 인천 미추홀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미추홀구에서 강도 연쇄살인을 저지른 권재찬(54)이 23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심에서는 사형이 선고됐으나 결국 2심에서 감형이 이뤄진 것이다.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26년간 국내에서 사형을 확정 받은 사형수는 48명. ‘보성 어부 살인’ 사건의 오종근,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강호순·정두영 등으로, 이들 모두 생존해 있다. 약 30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한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 반열에 들었다. 하지만 실제 형 집행을 논외로 하더라도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 자체도 드물다.
2021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인구 100만명 당 13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지만 유기징역을 선고 받는 게 대부분이며, 사형 판결까지 나오려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충격적 사건이어야 한다.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버려 찾을 수도 없게 만든 고유정조차 검사가 눈물을 삼키며 사형을 구형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력 범죄의 형량이 너무 낮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형 선고의 기준은 무엇이며, 현행 양형 기준에 문제는 없는 걸까.
현행 법 체계에는 대법원의 ‘양형기준’이란 게 있다. 대법원 산하 독립 국가기관인 양형위원회가 정하는 것으로, 형사재판에서 국민이 신뢰할 만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고자 세우는 기준이다.
법관이 반드시 양형위의 양형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조직법 제81조의7 2항에 따라 법관은 이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하려면 판결서에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양형위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재판부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92.9%에 육박했다.
양형기준에 따라 범죄 유형은 살인, 뇌물, 성범죄 등 총 46개로 나뉜다. 그 안에서 각각 권고 형량 범위가 설정돼있다. 살인의 경우엔 피해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거나 정상적 판단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참작 동기 살인’이 아니라면 가중 요소를 고려해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가 가능하다. 가중 요소로는 계획 살인, 사체 손괴, 존속 살인 여부, 사체 유기 등이 있다.
권재찬의 경우 강도살인으로 징역 15년형을 복역한 후 돈과 공구를 훔치고 재판을 받던 중 또 다시 2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인데, 이는 ‘중대범죄 결합 살인’에 해당된다. 중대범죄 결합 살인이란 강도살인, 강간살인,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약취·유인해 살해하는 것, 인질살해 등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형까지 뒷받침하는 양형기준이 존재함에도 대부분의 판결이 최대 무기징역에 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검찰 관계자는 “사실 양형기준 자체는 지금도 강한 편인데, 실제로 형량을 정하는 건 법관들의 재량에 달렸다”고 말했다.
특히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형량이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 권재찬뿐이 아니다. 2019년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부상을 입힌 안인득 역시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전형환 법무법인YK 변호사는 “1심 이후 피해자와의 합의나 개전의 가능성이 있으며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권재찬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인의 인간성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우나, 누가 보기에도 사형에 처하는 게 정당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지는 의문”이라며 형량을 낮췄다. 계획 살인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반성문을 제출하고 일부 범행을 자백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됐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인 만큼,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한다 해도 집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사형 선고율이 지나치게 낮은 데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사형 선고는 집행 여부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며, 가석방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분리하는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기징역은 사형과 달리 20년을 복역하면 가석방이 가능해지는데,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출소 후 피해자에게 보복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게 전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즉 우리 법 체계에는 없는 ‘종신형’을 도입할지 여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사형 제도의 존재 이유가 사실상 무의미한 만큼 현실적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 주요국 가운데선 미국과 영국 등이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이 안 되기 때문에 사형수가 미결수 신분으로 지낼 수밖에 없는데, 이 미결수들은 기결수와 달리 노역도 시킬 수가 없는 등 교도소 차원에서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형수를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대안도 있는 걸까.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교화의 여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길이기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다만 무기징역의 가석방 요건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무기징역형은 20년 이후 가석방 자격이 생기며, 유기징역형은 전체 형량의 3분의1을 살아야만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잔여 형량이 10년 미만이어야만 한다. 일례로 ‘N번방 사건’ 주범 조주빈의 경우 징역 43년을 확정 받았는데, 33년을 살아야만 가석방 자격이 생긴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은 20년만 살면 자격을 얻으니 오히려 가석방 받기가 더 쉬운 셈이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강도 연쇄살인을 저지른 권재찬(54)이 23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1심에서는 사형이 선고됐으나 결국 2심에서 감형이 이뤄진 것이다.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26년간 국내에서 사형을 확정 받은 사형수는 48명. ‘보성 어부 살인’ 사건의 오종근,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강호순·정두영 등으로, 이들 모두 생존해 있다. 약 30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은 한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 반열에 들었다. 하지만 실제 형 집행을 논외로 하더라도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 자체도 드물다.
2021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인구 100만명 당 13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지만 유기징역을 선고 받는 게 대부분이며, 사형 판결까지 나오려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충격적 사건이어야 한다.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버려 찾을 수도 없게 만든 고유정조차 검사가 눈물을 삼키며 사형을 구형했지만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력 범죄의 형량이 너무 낮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형 선고의 기준은 무엇이며, 현행 양형 기준에 문제는 없는 걸까.
대법 양형기준 “계획 살인 등 가중 요소 있다면 사형도 가능”
현행 법 체계에는 대법원의 ‘양형기준’이란 게 있다. 대법원 산하 독립 국가기관인 양형위원회가 정하는 것으로, 형사재판에서 국민이 신뢰할 만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고자 세우는 기준이다.
법관이 반드시 양형위의 양형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조직법 제81조의7 2항에 따라 법관은 이 양형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하려면 판결서에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양형위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재판부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92.9%에 육박했다.
양형기준에 따라 범죄 유형은 살인, 뇌물, 성범죄 등 총 46개로 나뉜다. 그 안에서 각각 권고 형량 범위가 설정돼있다. 살인의 경우엔 피해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거나 정상적 판단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참작 동기 살인’이 아니라면 가중 요소를 고려해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가 가능하다. 가중 요소로는 계획 살인, 사체 손괴, 존속 살인 여부, 사체 유기 등이 있다.
권재찬의 경우 강도살인으로 징역 15년형을 복역한 후 돈과 공구를 훔치고 재판을 받던 중 또 다시 2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인데, 이는 ‘중대범죄 결합 살인’에 해당된다. 중대범죄 결합 살인이란 강도살인, 강간살인,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약취·유인해 살해하는 것, 인질살해 등을 가리킨다.
양형기준 있어도 결국 법관 재량이 중요
이처럼 사형까지 뒷받침하는 양형기준이 존재함에도 대부분의 판결이 최대 무기징역에 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검찰 관계자는 “사실 양형기준 자체는 지금도 강한 편인데, 실제로 형량을 정하는 건 법관들의 재량에 달렸다”고 말했다.
특히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형량이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 권재찬뿐이 아니다. 2019년 경남 진주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부상을 입힌 안인득 역시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전형환 법무법인YK 변호사는 “1심 이후 피해자와의 합의나 개전의 가능성이 있으며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감형되는 사례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권재찬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인의 인간성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우나, 누가 보기에도 사형에 처하는 게 정당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지는 의문”이라며 형량을 낮췄다. 계획 살인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우며 반성문을 제출하고 일부 범행을 자백했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됐다.
”무기징역, 20년이면 가석방 가능해 보복 위험”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인 만큼,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한다 해도 집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사형 선고율이 지나치게 낮은 데는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사형 선고는 집행 여부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며, 가석방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를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분리하는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기징역은 사형과 달리 20년을 복역하면 가석방이 가능해지는데,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출소 후 피해자에게 보복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게 전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즉 우리 법 체계에는 없는 ‘종신형’을 도입할지 여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사형 제도의 존재 이유가 사실상 무의미한 만큼 현실적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 주요국 가운데선 미국과 영국 등이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이 안 되기 때문에 사형수가 미결수 신분으로 지낼 수밖에 없는데, 이 미결수들은 기결수와 달리 노역도 시킬 수가 없는 등 교도소 차원에서 관리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형수를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대안도 있는 걸까.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교화의 여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길이기 때문에,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다만 무기징역의 가석방 요건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무기징역형은 20년 이후 가석방 자격이 생기며, 유기징역형은 전체 형량의 3분의1을 살아야만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잔여 형량이 10년 미만이어야만 한다. 일례로 ‘N번방 사건’ 주범 조주빈의 경우 징역 43년을 확정 받았는데, 33년을 살아야만 가석방 자격이 생긴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은 20년만 살면 자격을 얻으니 오히려 가석방 받기가 더 쉬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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